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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연구재단 학술명저번역총서 동양편 991] 조반(造反)의 시대: 상하이 문혁 운동사【一】
저자 리쉰(李遜 / 손승회
출판사 세창출판사
발행일 2026-01-10
판형 A5신
ISBN 9791166844768
페이지수 442P
정가 3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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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이 책은 중국 문혁 10년 가운데 상하이를 핵심 대상으로 삼아, 상층 권력투쟁이 아니라 하층 대중운동을 중심으로 문혁의 성격을 분석한다. 저자는 문혁의 본질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영역을 대중운동에서 찾고, 이를 베이징을 전형으로 한 홍위병운동과 상하이를 중심으로 한 노동자 조반파운동이라는 두 축으로 정리한다. 홍위병운동은 1968년 상산하향(上山下鄕) 운동을 계기로 사실상 정리 국면에 들어갔으며, 이는 경제적 조치에 마오쩌둥(毛澤東)의 정치적 의도가 결합된 결과였다. 노동자 조반파운동은 1968년 대연합을 전후로 대체로 마무리되었으나, 왕홍원(王洪文)이 이끈 상하이 조반파는 조직을 강화하며 문혁 전 기간 동안 핵심 대오를 유지하면서 활동을 지속했다. 한편 상하이에는 장춘차오(張春橋)와 야오원위안(姚文元)을 중심으로 한 상하이시위원회 사작조(寫作組)라는 독특한 문혁 세력이 존재해, 지역 및 전국 여론에 큰 영향을 미치며 상하이 문혁을 중앙 문혁파와 긴밀히 연결했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상하이 문혁은 1965년 『해서파관(海瑞罷官)』 비판에서 출발해 1966년 안팅(安亭) 사건, 1967년 1월 탈권(奪權), 1976년 무장반항 미수에 이르기까지 마오쩌둥 문혁 노선을 현실에서 관철하는 핵심적 동력으로 작용했다. 저자는 이 과정에서 발생했던 주요 사건의 동기와 논리를 추적하며 상하이 문혁의 역사적 맥락을 해명한다.
차례
서문
서장: 혁명 명분의 유혹

제1장 『해서파관(海瑞罷官)』 비판: 상하이(上海)에서 비롯된 문혁 서막
상하이로 온 장칭(江靑)
커칭스와 『해서파관』 비판
마오쩌둥으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은 장춘차오
‘황금 몽둥이’ 야오원위안
상하이시위와 『해서파관』 비판
베이징시위의 반응
장춘차오의 학술계 반응 수집
“핵심은 파관(罷官)이다”
진장(錦江)호텔 난러우(南樓)회의
「2월 제강(二月提綱)」과 상하이
야오원위안의 ‘3가촌(三家村)’ 재비판
소결

제2장 귀신 비판 투쟁 풍조: 전환된 문혁 방향
상하이의 8명 전문학자 비판
‘우귀사신’ 비판의 고조
‘자산계급 반동노선’
시 전체에 대한 시위의 공작대 파견
상하이대학에 만연한 귀신 비판 투쟁
소결

제3장 붉은 8월: 17년 계급투쟁의 연속
첫 번째 시 전체 규모의 홍위병 조직
상하이의 ‘4구 타파’
‘홍색 공포’
조직적인 대규모 가택 수색, 몰수
가택 수색, 몰수 풍조의 만연
소결

제4장 베이징 홍위병의 상하이시위 전면 공격: 상하이조반파의 최초 모델
베이징 홍위병의 상하이 경험 교류
“상하이시위를 포격하라”
「우리 고참 노동자들은 발언해야 한다」와 양푸전(楊富珍)의 「마오 주석께 드리는 급전(急電)」
상하이시위 건물 앞에 모인 노동자조반파
저우언라이의 3가지 지시
베이징 홍위병의 두 번째 남하
베이징 홍위병의 세 번째 남하
소결

제5장 조반파 홍위병: 교당위(校黨委) 반대에서 시위 반대로
“푸단대학이 감기에 걸리면 상하이가 기침한다.”
푸단대학 홍위병 지도자: 라오위안이(勞元一)
푸단대학 홍위병 지도자: 안원장(安文江)
푸단대학 홍위병 지도자: 마리신(馬立新)
최초의 조반파홍위병
푸단대학: 상하이 3대 홍위병조반파 조직의 발원지
시 전체에서의 홍위병 조반 조직 흥기
시 전체 규모의 중학홍위병 조직
교당위 반대에서 시위 반대로
소결

제6장 공장 내의 조반파: 마오 주석의 호소에 호응한 적극 분자들
상하이에서 시작된 공장 문혁
공장 기층 간부 왕훙원(王洪文)
왕훙원의 최초 조반
노동 모범 왕슈전(王秀珍)
단지부 서기 진쭈민(金祖敏)
당원 기간이 가장 오래된 겅진장(耿金章)
청년노동자 판궈핑(潘國平)
5호(五好) 노동자 황진하이(黃金海)
문혁위원회 위원 예창밍(葉昌明)
제대군인 천아다(陳阿大)
임시노동자 다이리칭(戴立淸)
양성 대상 셰펑페이(謝鵬飛)
최초의 조반 원인
소결
저자
리쉰(李遜)
여성, 1948년생, 상하이 성인 야간학교 중문과 졸업. 1968년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한 상태에서 상하이 전기기계 공장에 배치되어 근무했으며, 약 10년 동안 도장공으로 일했다. 1978년 말부터 1992년까지 상하이시 총공회 생산부와 상하이시 총공회 노동운동연구소에서 차례로 근무했다. 주요 저서로는 미국 엘리자베스 페리(Elizabeth J. Perry)와 함께 『무산계급의 역량: 상하이 문화대혁명』(Proletarian Power: Shanghai in the Cultural Revolution, Westview Press, 1997)을 집필하였고, 『혁명조반 연대: 상하이 문혁운동사고(革命造反年代: 上海文革運動史稿)』(Oxford University Press, Hongkong, 2015)를 간행하였다.

손승회(孫承會)
1961년생,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 학사·석사·박사 졸업. 공주대학교, 서울대학교, 국민대학교 등에서 시간강사, 성균관대학교에서 연구교수로 근무한 뒤 현재 영남대학교 역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전공은 중국근현대사. 주요 저서로 『근대중국의 토비세계』(창비, 2008), 『문화대혁명과 극좌파: 마오쩌둥을 비판한 홍위병』(한울, 2019) 등이 있고, 역서로는 『인물로 본 근대중국』(영남대출판부, 2008), 『덩잉차오평전 1·2·3』(소명출판사, 2012), 『중국근현대사: 혁명과 내셔널리즘 1925-1945』(삼천리, 2013), 『동아시아의 사형』(영남대출판부, 2014), 『문화대혁명』(영남대출판부, 2017) 등이 있다.
출판사 서평
이 책은 상하이(上海)에서 벌어진 10년간의 문혁 역사를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상하이 문혁은 중국 전체 10년 문혁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으며, 특히 상층 정치 투쟁을 제외한 대중운동에서 문혁의 특징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 주었다. 문혁 대중운동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베이징(北京)을 중심으로 한 홍위병(紅衛兵) 운동이며, 다른 하나는 상하이를 중심으로 하는 노동자조반파(造反派) 운동이었다. 홍위병 운동은 1968년의 상산하향(上山下鄕) 운동에 이르러 기본적으로 마무리되었다. 노동자조반파 운동은 1968년 ‘대연합(大聯合)’ 때 사실상 종료되었다. 그러나 왕훙원(王洪文)이 이끌던 노동자조반파만은 조직 체계를 확립하면서 핵심 세력을 유지하였고, 문혁이 지속된 10년 동안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홍위병과 노동자조반파 외에, 상하이에는 다른 성(省)이나 도시에는 없는 독특한 문혁 세력이 존재했다. 그것이 장춘차오(張春橋)와 야오원위안(姚文元)을 핵심으로 하는 공산당 상하이시위 사작조(寫作組)였다. 이들은 상하이 여론을 좌우했을 뿐만 아니라, 전국 여론에 대해서도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상하이 문혁은 중앙 문혁파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1965년 『해서파관(海瑞罷官)』 비판을 시작으로, 1966년 안팅(安亭) 사건, 1967년 1월 탈권(一月奪權), 1976년 무장 저항 미수 사건에 이르기까지, 상하이 문혁 세력은 마오의 문혁 노선을 위한 돌파구를 마련하며 그의 정치적 구상을 충실히 따랐다.

저자는 이 책의 전체적 서사를 통해 “왜?”라는 질문을 지속적으로 던지며, 역사적 동기와 논리를 추적하고자 했다. 각 장(章)과 절(節)의 서술에는 모두 이러한 문제의식이 내재되어 있다. 수많은 사건과 역사적 상황이 처음 어떻게 발생하게 되었는지를 면밀히 검토함으로써, 그 역사적 배경과 맥락을 찾고자 하였다. 또한 역사란 개별적 세부 사실들의 축적으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며, 만약 이러한 세부 요소가 결여된다면 역사는 거대한 블랙홀처럼 공백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또한 문혁 참여자의 운동 과정과 그들의 모습을 최대한 재현하고자 했다. 그들 역시 역사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상하이 문혁 연구에 대한 저자의 관심은 단지 안팅(安亭) 사건, 『해방일보(解放日報)』 사건, 캉핑루(康平路) 사건, 1월 탈권 등과 같은 중대한 정치 사건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또 다른 연구 관심사는 노보(老保) 조직, 대연합, 관료제 정비, 변화된 대중 조직, 후기 조반파, 사작조, 제2 무장 등과 같은 다양한 영역에 미쳤다. 이들은 모두 문혁의 중요 구성 요소로 연구되어야 마땅하다. 비록 사료의 한계로 인해 연구를 더욱 심화시키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이러한 논의가 실마리가 되어 다른 연구자들의 견해를 이끌어 내고, 이들 영역에 대한 학계의 관심을 환기시킬 수 있기를 바란다. 나아가, 후속 연구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또한 문혁을 직접 경험하지 못한 젊은 세대가 역사적 기억을 되새기며, 문혁의 실제 현장을 재현할 수 있도록 돕고자 한다.
책 속으로
『해서파관』 비판은 상하이에서 시작되었고, 이 때문에 상하이시위는 어느 정도 스스로 공을 세운 것으로 여겼다. 상하이 지도 간부들은 이번 정치 운동에서 잘못된 편에 서지 않았기 때문에 펑전과 같은 불행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단지 시작에 불과했고, 지식인 비판을 계기로 한 이 운동이 더 큰 정치 계층, 특히 각급 지도 간부들을 대상으로 확대될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141쪽)

‘4구 타파’의 광풍이 몰고 온 중국 문화에 대한 파괴는, 역사상 그 어떤 천재지변이나 인재, 혹은 전란과 비교해도 가장 철저하고 광범위하게 이루어졌다. 수백 년 된 패루(牌樓)와 패방(牌坊), 석비(石碑), 나무 현판 등이 모두 파괴되어 하나도 남지 않았다. 문혁 이전에는 이러한 유산들이 상하이 주변의 성진(城鎭)과 향촌에 널리 남아 있었으나, 상하이 교외에 위치한 쑹쟝(松江), 자딩(嘉定) 등 옛 현성(縣城)들은 천 년이 넘는 역사를 지녔음에도 ‘4구 타파’를 견디지 못하고 영원히 소실되었다. (197쪽)

베이징 홍위병의 상하이 문혁 비판은 철저히 베이징식 문혁 기준에 입각해 이루어졌다. 당시 베이징에서는 각급 당위의 권위가 이미 무너졌고, 문혁은 학생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었다. 반면 상하이에서는 여전히 각 학교 문혁 운동이 당위 또는 당 지부에 의해 장악되고 있었으며, 운동 대상도 당위가 직접 지정해 대자보 비판을 유도하고 있었다. 이 점에서 베이징 홍위병은 상하이 운동이 ‘소극적’이며, 「문혁 16조」가 강조한 “운동의 중점은 자본주의 길을 걷는 당권파 제거에 있다”는 원칙에 어긋난다고 판단했다. (233쪽)

마오쩌둥의 개인 권력과 위신이 정부, 법률, 집권당을 초월하면서, 그의 한마디 말, 비판, 결정은 곧 최고의 절대적 권위를 지니게 되었다. 중앙문혁소조원들은 마오의 생각과 의지를 가장 먼저 파악할 수 있었고, 이로 인해 중앙문혁소조는 타 조직에 비해 우월한 정치적 지위를 누릴 수 있었다. 누구든 마오의 의중을 정확히 파악하기만 하면, 그는 곧 마오 담화의 실행 주체로서 주도권을 장악할 수 있었다. … 그러나 문혁 기간, 마오가 정리 대상으로 삼은 것은 다름 아닌 바로 이 중앙 결정층과 간부 계층이었다. 정치적 상황과 중앙 방침에 대한 해석권이 간부들로부터 박탈된 것이다. (284쪽)

1966년 8월부터 10월까지 상하이의 조반파홍위병들은 주로 교류 활동을 전개하며 조직 역량을 강화했다. 이들은 각종 집회와 행동을 통해 자신의 혁명성을 분명히 드러냈다. 이 시기 상하이의 운동은 점차 시위 중심에서 벗어나 마오와 중앙 문혁 지도부의 방침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학교 내 교당위 반대 투쟁은 점차 학교 밖 시위와 결합하며, 더 큰 정치적 흐름으로 발전해 나갔다. (339쪽)

왕훙원은 당의 호소에 호응하여 조반하였고, 그런 상황에서 공산당원으로서 그가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은 필연적이었으며, 그것은 당의 일관된 요구이자 지침이었다. 왕훙원과 대립했던 보수파 가운데 한 명은 40년이 지난 후 “그는 결국 공산당원이었으며, 다른 조반파에 비해 책략을 중시했다”고 회고하였다. … 그의 조반은 일부 조반파처럼 방자하거나 거리낌 없이 행동하지 않았으며, 전체적으로 당시 허용된 규범 내에서 이루어졌다. 이것은 많은 공산당원 출신 조반파의 공통된 특징이었다. (370-371쪽)

조반파 중 상당수는 문혁 전의 다른 보통 노동자들에 비해 더 강한 자아의식과 개성을 지녔고, 현실에 불만을 품으며 자기 인생을 설계하고 추구하려 했다. 이렇게 자기 인생의 의미에 대해 명확한 목표를 가진 사람들은 어느 사회에나 존재하지만, 사회 형태에 따라 그 표현 방식이 다를 뿐이었다. … 이번 문혁 정치운동은 하층 노동자들에게 운동 과정에서의 표현을 통해 정치 자원을 쌓고, 정치적 명분을 높여 사회적 신분을 상승시킬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438-4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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