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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유토피아 (아도르노의 문제의식)
저자 문광훈
출판사 세창출판사
발행일 2024-08-13
판형 152*223
ISBN 9791166843396
페이지수 488P
정가 31,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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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서점 교보문고 인터파크 도서 예스24 영풍문고 반디앤루이스 알라딘


책소개
산업화 이후의 현대 사회에서 많은 영역은 수익과 이윤의 원리에 따라 움직인다. 예술이나 문화에는 삶을 물질화하려는 경향을 거스르는 성질이 있지만, 현대에 들어와서는 시장의 간섭과 상품물신주의의 영향을 받으면서, 그 성질이 상당 부분 훼손되고 말았다. 모든 것이 상품화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제 가장 먼저 고려되는 요소는 ‘효용’과 ‘쓸모’다. 이익에 반하는 요소들은 이질적인 것으로 간주되어 가차 없이 추방당한다. 물질화-자본화-상업화된 삶의 세계에 내재한 모순들은 이질적인 것들이 추방되면서 매끄럽게 중화된다. 이 물질화에 대한 예술과 문화의 비판적 잠재력마저 고갈된 처참한 현실에서 예술과 철학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예술과 철학을 중심으로 선회하는 아도르노의 문제의식은 바로 이 처참한 현실에 대한 인식에서 발원한다.

이 책은 20세기 독일 철학자 테오도어 아도르노의 철학적 사유와 미학적 통찰을 심도 있게 탐구하며, 오늘날의 물질적 비참과 문화 산업의 획일화된 구조 속에서 예술에 내재한 유토피아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아도르노의 압축적이고 복잡한 철학적·미학적 개념들을 간명하게 풀어쓰기 위해, 오랜 기간에 걸친 저자의 연구와 성찰이 곳곳에서 엿보인다. 저자는 아도르노의 부정성, 비동일성, 타자성 등의 주요한 개념을 중심으로, 예술이 어떻게 현대 사회의 모순과 대립을 극복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는지를 논증한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철학과 예술에 관한 아도르노의 섬밀한 사유를 따라가면서, 예술과 철학이 모순된 현실에 응전하는 과정을 생생하게 마주할 것이다.
차례
서문

1장 예술과 이성

I. 시작하면서
1. 편재하는 피상성 속에서
2. 논의 절차

II. 현대사회의 모호성과 불안정
1. ‘사물화된’ 삶
2. 자본주의적 환산화 체계
보론 1 혁명의 전체주의화 ― 동일성 원리의 폐해
3. 전후의 독일 현실
4. 책임 있는 주체의 복원

III. 심미적 이성의 비판적 잠재력
1. 탈예술화 시대에
2. 부정성

IV. 예술의 합리성
1. 아포리아와의 대응방식
2. “보다 나은 실천”
3. 심미적 이성 = “제2의 반성”

V. 예술의 유토피아
1. “존재하지 않는 것의 상기”
2. 자기성찰 ― “문화의 실패”로부터
3. “어둠에의 참여”
4. “훼손되지 않은 삶”

VI. 심미적 주체의 가능성
1. 새로운 주체와 사회
2. 생기의 복원
3. 윤리적 실천의 행복한 길

2장 예술-주체-교양-자율

I. 주체의 형성
1. 개인(성)의 왜곡
2. 낯선 것들의 경험 ― 치유방식
3. 주체의 재구성 ― 여섯 요소

II. 교양과 부정적 사유
1. 교양과 주체 강화
2. 새로운 인문주의의 방향
보론 2 인간학적 자기형성 ― 훔볼트의 교양개념

III. 예술의 윤리
1. 비상브레이크 ― 휴머니즘 비판
2. 심미적인 것의 가능성

IV. 자율적 삶으로 ― 결론
1. 동일화 사고를 넘어
2. 고요와 화해와 평화 ― 절제와 유보 속에서
3. 새로운 주체와 사회
4. ‘책임 있는 교양’이 가능한가?
5. 배반과 좌절을 넘어

3장 예술의 타자성

I. 시작하면서

II. 타자적 개방성
1. 개별적인 것의 옹호
2. ‘동일화 강제’에 거슬러
3. ‘가상’개념 비판

III. 불협화음의 진실 ― ‘거짓 조화’를 넘어
1. “반反조화적 제스처”
2. “긴장의 조정”
3. 불확실성과의 대결방식

4장 문화산업과 문화비판 ― 오늘의 상품소비사회에서

I. 논의 절차

II. 사물화된 현실에서
1. 12년의 망명 생활
2. ‘아우슈비츠’라는 파국
3. ‘총체적’ 관리사회

III. ‘문화산업’ = 상업화된 시장문화
1. 표준화 = 수익화 = 획일화
2. 캐스팅 쇼
3. 상투성의 세계 ― “언제나 동일한 것의 자유”
4. 문화산업의 자기기만

IV. 예술의 자율성
1. 문화산업 대 자율예술
2. 예술의 탈예술화
3. 자율적 예술의 부정적 계기

V. 문화비판의 변증법
1. 부정주의
2. 자기역류적 사고
3. “내재적 비판적 문화”
4. 사물화를 견뎌 내기

VI. 거칠지 않은 것들 ― 문화의 약속
1. 사물화된 삶의 항구적 되풀이
2. 칸트적 푸코적 계기
3. 문화이해의 비판적 존재론

5장 타율성에 대한 저항

I. 아우슈비츠 이후의 교육은 어떻게 가능한가?
1. 역사의 외면, 책임의 회피
2. 집단과의 맹목적 동일시
3. 비판적 자기성찰 ― 민주적 교육의 방향

II. 교양의 문제
1. 어설픈 교양의 보편화
2. 정신의 수단화 ― 문화물신주의 비판
3. 교양의 변증법
4. 자율적 사회의 자기성찰적 개인

III. 사물화된 의식비판 ― 철학의 문제
1. 전문화로 인한 위기
2. 두 학파의 사례 ― 논리실증주의와 하이데거 철학
3. 비판 ― 타율성에 대한 저항

IV. 자율적 개인의 자기성찰적 능력 ― 결론

6장 알렉시예비치에게 대답하다 ― 결론을 대신하여

I. 소비에트 시절의 삶
1. 호모 소비에티쿠스
2. 스탈린 숭배자들
3. “평범한 망나니들”의 밀고
4. 기묘한 공생관계 ― 희생자이자 망나니인

II. 예술의 방식
1. ‘언제나 전쟁 중인’ ― 평화로운 삶을 살아갈 능력이 없는
2. 심미적 태도 ― 비폭력적 매개의 화해방식

III. 아도르노를 체득했다면 그를 떠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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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지은이 문광훈

1964년 부산 출생. 고려대학교 독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독일 프랑크푸르트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고려대학교 아세아 문제연구소 연구교수를 거쳐 현재 충북대학교 독일언어문화학과에 재직 중이다.
『자서전과 반성적 회고』(2023), 『예술과 나날의 마음』(2020), 『미학수업』(2019), 『심미주의 선언』(2015), 『가면들의 병기창』(2014), 『사무사(思無邪)』(2012) 등을 썼고, 리온 포이히트방거의 『고야, 혹은 인식의 혹독한 길』(2018), 아서 쾨슬러의 『한낮의 어둠』(2010)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출판사 서평
총체적으로 관리화된 사회에서 요구되는
현실의 처참함에 대한 인식


‘총체적’이란 ‘전체화한다’, ‘철저하게 관리한다(durchverwaltend)’는 뜻이다. 여기서 관리란 대상을 ‘조작과 지배의 물건’으로 삼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총체적으로 관리당하는 인간은 언제든 반복할 수 있고 대체할 수 있는 관점에서 처리된다. 사물화된 삶에서 인간은 자율성을 상실하여 제대로 된 주체로 살아갈 수 없다. 자아는 죽어 있으므로 주체는 더 이상 사유하지 못한다. 고유성을 존중받지도 못하고, 총체화된 관리사회가 주입하는 사상에 침윤될 뿐이다. 그 결과 모든 인간은 획일화된 원칙에 종속되어 천편일률적인 모습으로 살아간다.

이 동일성의 원리가 정치적으로 구현된 가장 끔찍한 역사적 사례가 바로 아우슈비츠다. 이 아우슈비츠에서 아도르노는 ‘문화의 악취’를 느끼고 ‘문화의 실패’를 확인한다. 아우슈비츠의 대량 학살은 절대화된 동일시의 무자비한 실행에서 초래되었다. 그것은 환원불가능한 개인의 고유성을 동일성의 원리로 완벽하게 폐기한 무자비한 정치적 실천 사례다. 아우슈비츠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그와 비슷한 어떠한 사건도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순수한 직접성의 계기를 불신하는 일이다. 부정적(否定的)인 태도로 모든 것을 비판하면서 거리를 두고, 거리를 두면서 공감하는 것이 필요하다. 공감 속에서 비판하고, 비판 속에서 사랑하는 모순된 태도를 견지하는 일, 그래서 내재성과 초월성의 긴장을 현실의 변화를 위한 생산적 계기로 삼는 것이 문화이해에서도 절실하다.


낯선 것에 대한 포용,
예술과 철학이 그려 내는 유토피아


저자는 아도르노의 미학을 구성하는 주요한 개념들을 타자성(das Andere/the Other)이라는 관점에서 정교하게 재배열한다. 아도르노의 미학적 문제의식은 무엇이고, 그 현실적 타당성이 어디에 있는지를 묻는다. 아도르노에게서 타자적이고 이질적인 것은 예술이 추구하는 지향점으로서 사물화되지 않은 것이다. 그것은 문화 산업이 내세우는 효용이나 수익 혹은 교환의 원리에 순응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술은 낯선 것을 배제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예술의 유토피아란 타자성을 옹호하는 것이고, 낯선 것을 추방하지 않는 상태다. 거기에서 모든 소외는 지양될 것이기 때문이다. 타자를 위한 예술의 지향은 아마 철학의 지향과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즉, 예술과 철학은 낯설고 이질적이고 타자적인 것을 적극적으로 포용한다. 이렇게 낯선 것을 외면하거나 억압하는 게 아니라, 이해하고 포용할 수 있다면 삶의 소외는 현격히 줄어들 것이다. 낯선 것을 포용하는 이러한 상태야말로 예술과 철학과 삶의 유토피아다.
책 속으로
p.17
그러므로 현대예술의 유토피아는 디스토피아의 처참한 인식에서 시작한다. 어떤 디스토피아인가? 그것은 더 나은 삶이 전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판명된 아포리아적 현실이다. 이 현실이란 돈과 자본의 수익현실이고, 산업과 상업의 스마트 현실이며, 디지털 기술이 지배하는 가상현실이다. 스마트폰을 쓰면 우리는 정말 스마트해지는 것인가? 곳곳에 기회가 있듯이 위기가 있고, 어지러운 유혹이 있듯이 암울한 몽매가 자리한다. 아마도 재앙 없는 발전은 없을 것이다. 예술은 아포리아 현실에서 유토피아를 꿈꾼다.

〈서문〉 중에서

p.96~97
매개 없이 사유는 실체화되고 신앙화된다. 의미는 자기성찰의 매개를 거쳐야 한다. 철학도 간단히 말하여 자기비판으로서의 변증법적 운동 외에 다른 게 아니다. 아도르노의 부정변증법적 사유가 지향하는 것은 이 비판적 자기성찰이다. 그는 ‘종합’이나 ‘총체성’이라는 말을 병적일 정도로 혐오했다. 이런 어휘들은 이데올로기적 어조를 띠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제든 강압과 기만의 허위로 변질될 수 있다.

〈1장 예술과 이성〉 중에서

p.239
예술의 유토피아가 단순히 메시아적 구원이나 초월적 내세를 약속하는 데 있지 않다면, 그래서 지금 여기에서 오늘을 비판하는 가운데 더 나은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심미적인 것의 내재적 비강제적 계기에 기댈 수 있다. 이 계기에 배인 자기변형의 윤리적 방법으로 현실을 쇄신해 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심미적 태도는 곧 현실에 대한 대응방식의 하나이면서 삶의 권고할 만한 자세가 된다. 그것은 문명과 야만 사이에서 더 나은 삶을 향한 이성적 가능성을 모색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심미적 판단의 훈련은 곧 비판의 윤리성 훈련이다.

〈2장 예술-주체-교양-자율〉 중에서

p.276
결국 예술의 유토피아란 타자성을 옹호하는 것이고, 그래서 낯선 것을 추방하지 않는 상태이다. 거기에서 소외는 지양될 것이기 때문이다. 예술의 이 타자적 지향은 아마 철학의 지향과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즉 예술과 철학은 어떤 낯선 것 ― 이질적이고 타자적인 것의 포용에 적극적이다. 이렇게 낯선 것을 외면하거나 억압하는 게 아니라, 이해하고 포용할 수 있다면 삶의 소외는 현격히 줄어들 것이다. 바로 이런 상태 ― 낯선 것의 포용이야말로 예술의 유토피아이자 철학의 유토피아이고, 나아가 삶의 유토피아가 될 것이다. 이 낯설고 이질적이며 타자적인 것의 원형은 아마 자연이 될 것이다.

〈3장 예술의 타자성〉 중에서


p.316
오늘날 예술은 스스로 타율화되면서 상품이 되고 키치가 된다. 현대의 이데올로기는 키치적 문화상품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이데올로기가 이념의 변질이라고 한다면 이 변질된 이념으로서의 이데올로기 자체가 자본의 수익적 관심을 대신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현대문화의 타락이고 그 변질이며 퇴행이다. 아마도 주어진 것 ― 기성질서에만 꿈이 머문다면 우리는 이데올로기적이지 않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니 이미 있는 것의 너머로 우리는 나아가야 한다. 이렇게 ‘그 너머로 나아가는’ 것이 야말로 문화와 예술의 본래적 방향이기도 하다. 예술은 개별적인 것의 유일무이한 진실성 속에서 기존질서 그 너머를 추구한다.

〈4장 문화산업과 문화비판〉 중에서


p.400
나치즘 체제의 몰락 이후 오늘날의 민주주의 체제에서도 집단적 나르시시즘이 사라지지 않는 것은 아마도 주어진 것들에의 순응을 강요하는 자본주의적 사물화 이데올로기 때문일 것이다. 사물화된 삶은 결국 사랑의 사물화다. 여기에서 인간은 이미 죽어 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주체-자아-개인-의식의 문제로 돌아간다. 핵심은 이 주체/개인을 어떻게 교육할 것인가다. 그것이 ‘민주적 교육의 방향’으로서의 ‘비판적 자기성찰’이다.

〈5장 타율성에 대한 저항〉 중에서

p.480
나는 아도르노를 읽으면서 그의 사상을 배웠고, 그에 대해 쓰면서 그와의 작별을 준비했다. 한 사상가에 대한 최고의 경의는 그에 대해 쓰면서 자기 나름으로 살아가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 나름의 자기 삶을 사는 것, 그것이야말로 철학과 예술을 공부하고 미학을 실천하는 길이다. 되풀이하건대 미학의 완성은 각 개인이 자기에게 어울리는 뜻과 보람 속에 사는 데 있다. 그때에는 미학이라는 말이나 아도르노라는 사상가도 필요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그를 떠난 후 우리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그와 다시 만날 수도 있다
〈6장 알렉시예비치에게 대답하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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