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관법은 그 실무적 중요성에 비하여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문헌이 많지 않고 그 연구의 깊이도 아주 깊은 편이 아니라는 생각에서 책을 써야겠다는 목표로 연구를 한 지 20년이 지났다. 그 사이에 여러 번 책을 내야겠다고 이야기만 하고 끝맺지 못하다가 모교인 고려대학교로 옮긴 뒤 첫 방학을 맞이하여 지금까지의 연구를 매듭짓고자 시간을 내어 약관법 책을 마무리했다. 프랑스 파리의 에펠탑 밑 그리고 박사과정의 추억이 묻어 있는 독일 튀빙겐 대학교 교정에서 고된 교정작업을 마쳤다.
약관법론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내게 된 이 책은 여전히 약관법과 관련된 쟁점을 모두 다루고 있지 못하다. 이 책에서는 약관법의 총론부분만 다루고 개별적 불공정 심사기준과 분야별 약관에 대해서는 다루고 있지 못하기에 아직 미완성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럼에도 약관법의 총론부분에서 해결되지 못한 많은 부분을 일관된 시각과 관점으로 서술하고자 노력하였다. 따라서 거시적 관점으로 보았을 때에는 그 자체로 책의 완전성을 인정하고 싶은 마음이다. 물론 더 많은 쟁점을 자세히 연구한 후 좀 더 완성도 있는 책을 낼 수도 있지만, 한시라도 빨리 내 달라는 많은 분들의 요구와 실무적 필요성을 느껴 서두르게 됐다. 후술하겠지만, 전기료 누진제 판례처럼 약관법 법리에 정면으로 반하는 전제를 바탕으로 내려진 판결이 실무에서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판례는 약관법 제정 이전의 태도를 완전히 버리지 못하고 약관법을 바탕으로 한 법리개발을 비교적 소홀히 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물론 이는 학자들이 깊이 있는 연구를 통하여 약관법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길을 보여 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은 약관법의 기본적인 이론적 맥락을 일관되게 서술함으로써 약관법이 실무에서 제대로 해석되고 적용되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쓰여졌다. 약관법의 입법목적을 달성하는 방향으로 약관법이 적용되어 약관을 통한 거래생활을 활성화하면서도 적절한 고객의 보호를 수반하는 약관법에 대한 이론을 제시하고자 했다. 넓은 약관개념의 인정, 편입요건의 간편화, 객관적 해석의 강조, 법적용으로서의 약관에 대한 내용통제 등으로 전체 이론전개 방향을 압축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구체적인 의미는 책을 읽으면서 이해하기 바란다.
이 책의 이론은 약관법이 탄생한 독일의 이론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필자가 독일에서 초등학교를 나오고 박사학위를 취득한 인연이 있음과 상관없이 독일 법학의 깊이에 항상 감탄을 하며 연구를 하고 있다. 약관법의 경우도 독일에서는 방대한 양의 자료가 축적되어 있다. 그에 반해 빈약한 우리 학계의 현실에 안타까움을 느끼며 조금이라도 더 많은 학문적 자료를 제공하기 위하여 이 책을 세상에 내어놓는다. 물론 우리 문헌을 반영하여 우리의 학문적 성과도 최대한 반영하려고 노력하였다.
작년 말에 약관법 연구를 조금 더 깊이 있게 연구하기 위하여 약관법연구회를 만들었다. 이 연구회를 같이 시작하여 주신 장경환 교수님, 김규완 교수님, 서희석 교수님, 황원재 교수님, 김화 교수님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리며 앞으로도 같이 연구하며 많이 배우겠다고 다짐하여 본다. 다른 한편 올해 민법 개정작업이 다시 시작되었다. 민법 개정위원으로 힘을 보태고 있는 것과는 별개로, 소비자법 및 약관법이 민법에 일부 편입되는 과정을 거치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이 책이 나오면서 원고 정리, 교정 및 색인 작업에 힘써 준 후배 교수인 황원재 교수 그리고 제자들인 한종현 변호사, 문현지 석사, 장남호 학사에게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이번에도 수익성이 없는 책의 출판을 기꺼이 허락하여 주신 세창출판사의 이방원 사장님과 임길남 상무님에게도 특별한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