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실의 의례를 위한 재원은 어떻게 운영되었을까?”
조선시대 왕실의례는 왕실만을 위한 행사라는 의미를 넘어 국체와 관련되어 있었다. 그리고 왕조시대는 왕실과 국가를 정확하게 구분하기 어렵다. 이로 인해 왕실의례를 성사시키기 위해 왕실뿐만 아니라 국가조직이 총동원되었다. 도감을 중심으로 중앙 관서는 물론 지방관에 이르기까지 복잡하게 필요한 재원이 동원되었다.
왕실의례는 생애주기의 관점에서 출합, 가례, 진연・진찬 그리고 봉릉의 사례를 살펴볼 수 있다. 국왕은 왕실의 이해와 국가경영 사이에서 고심했으며, 신료들은 왕실 지출을 견제하려 했다. 의례에 방대한 물력과 인력이 동원되어야 했기에 이들 재원의 규모에 대한 국왕과 신료 사이의 끊임없는 절충 과정은 복잡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므로 왕실의례와 관련하여 왕실문화를 창출하기 위한 물적 토대를 밝히지 않고는 본질에 접근할 수 없다. 조선왕실의 의례를 중심으로 재원운영의 실태를 밝히는 일은 왕실문화를 알고자 하는 모두에게 흥미로운 작업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