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은 아도르노에게 단순히 이런저런 철학적 반성의 대상 중 하나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도덕의 문제는 결국 자유의 문제이며, 자유는 아도르노가 평생에 걸쳐 사유했던 해방적 실천의 가능성 한가운데에 놓여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자유는 가능한가? 오늘날 올바른 삶의 가능성은 어떤 방식으로 주어져 있는가? 이런 물음들이 도덕에 대한 그의 사유를 이끌고 있으며, 이 사실은 도덕철학이 아도르노 철학 전체에 대해서 갖는 근본적인 의미를 입증한다.
이런 문제의식 속에서 아도르노는 『미니마 모랄리아』(1951)에서 현대적 삶의 편린들을 좇아 오늘날 도덕적 삶의 상태와 가능성을 아포리즘 형식 속에서 탐색했으며, 『부정 변증법』(1966)의 한 장에서는 칸트의 도덕철학을 모델로 삼아 변증법적 도덕이론을 전개한다. 아도르노가 프랑크푸르트 대학교에서 1962-1963년에 강의했던 내용을 담고 있는데 이 책 『도덕철학의 문제』는 이 두 저작을 서로 연결 지을 수 있도록 전체적인 관점을 제공해주며, 동시에 ‘살아있는 말’로써 아도르노의 도덕 사유를 가장 구체적이고도 풍부한 형태로 전달해준다. 그리고 이 책에 담긴 ‘철학함’에 대한 그의 생각과 조언, 자기 고백은 그가 스스로 출간한 다른 저작들에서는 좀처럼 발견하기 힘든 것으로, 이 또한 독자에게 각별한 즐거움을 준다. 독자는 이 강의록을 통해서 아도르노의 도덕 사유 그리고 사유에 대한 사유를 생생하게 대면하는 더 없이 값진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추천사
아도르노는 세상을 떠났던 해인 1969년을 즈음해서 자신의 주 저작을 『부정 변증법』, 『미학 이론』과 집필을 계획 중이었던 도덕철학적 저작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 생각은 그가 말년에 도덕철학적 문제들에 자신의 사유와 집필을 집중할 계획을 갖고 있었음을 반증한다. 아쉽게도 그의 계획은 실현되지 못하였다. 그럼에도 우리가 그의 도덕철학적 사유의 편린들을 이번에 한국어로 출간한 강의록인 『도덕철학의 문제』를 통해 경험할 수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하겠다.
아도르노는 자신의 도덕철학적 사유를 칸트의 도덕철학과의 비판적 대결을 통해 전개한다. 그가 볼 때, 칸트의 도덕철학은 실천적 잠재력을 결여한 약점을 지니고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그가 도덕철학에 도입한 개념이 충동이다. 그가 말하는 충동은 심리적·감성적 충동이 아니고 역사적으로 전개되는 사회적 현실의 부정성으로부터 발원하는 충동, 곧 이성이 개입된 충동이다. 그는 이러한 의미에서의 충동이 자기반성에 이르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충동과 자기반성의 구체적이고도 실천적 차원에서의 상호작용을 통한 올바른 삶의 실현에 기여하는 도덕의 패러다임을 모색하는 강의가 바로 『도덕철학의 문제』이다.
아도르노의 도덕철학을 주제로 학위를 받은 신진 학자인 정진범 박사가 심혈을 기울여 우리말로 옮긴 이 책은 한국 학계에서 도덕철학의 논의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보며, 전문학자들이 아닌 일반 독자들에게도 도덕에 관한 새로운 관점과 인식을 매개할 수 있을 것이다.
문병호(철학자, 전 연세대 HK교수)